[화본역]기차는 떠났지만, 역은 남았다 <리틀포레스트>촬영지 대구 군위 ‘화본역’
산성면으로 들어서자 길이 좁아졌다. 산이 가까워졌다. 신호등이 사라졌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났다. 낮고 작은 역사 건물. 지붕은 갈색, 벽은 연분홍. 화본역.

1936년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24년에 닫혔다. 거의 90년.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벤치가 ㄱ자로 놓여 있었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먹으로 그린 듯한 그림이 가득했다. 꽃, 나뭇잎, 전통 건물.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이 천장을 올려다봤겠구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아서, 자꾸 위를 봤겠구나.


매표소 창구 위에 한자가 걸려 있었다.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기차역 매표소에 왜 이 말이 걸려 있는지 몰랐다. 근데 한참 보다 보니 이상하지 않았다. 여기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 설레는 마음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같은 역인데 다 다른 곳에 있었겠지.

혜원도 이 역에서 내렸다.
〈리틀 포레스트〉.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 기차에서 내리고, 짐을 들고, 걸어가는 혜원. 그 배경이 여기다. 플랫폼에 서봤다. 선로가 두 줄, 길게 뻗어 있다. 저 멀리 산. 배롱나무 분홍꽃이 바람에 흔들렸다. 기차는 이제 안 오지만, 풍경은 그대로다.

급수탑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봤을 땐 그냥 낡은 콘크리트 탑이었다. 문을 열자 달랐다. 둥근 벽이 높게 올라가 있고, 꼭대기 작은 창으로 빛이 비껴 들어왔다. 중앙에 흰 말이 서 있었다. 천마. 입을 벌리고, 고개를 들고, 지금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 것 같았다. 그 위로 나비들이 실에 매달려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낡은 콘크리트 벽, 옛사람들이 새긴 낙서, 그 한가운데 흰 말과 나비들.
위를 한참 바라봤다.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역 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삼국유사 인물 조각상이 있었다. 군위가 삼국유사의 고장이라는 걸 여기서 알았다. 만화 캐릭터 같은 포토존도 있었다. “거기 안서!” 말풍선이 달린 일러스트. 웃었다. 찍었다.

역 한편에는 낡은 기차 한 량이 카페가 되어 서 있었다. 창밖으로 선로가 보였다. 기차 안에서 기차를 바라보는 것. 이상한 기분이다. 나쁘지 않다.

돌아나오는 길, 한번 뒤를 돌아봤다.
화본역이 작게 보였다. 산이 그 뒤를 받치고 있었다. 1936년부터 지금까지. 기차도 떠나고, 사람도 떠났지만, 역은 여기 남았다.
어떤 장소는 문을 닫은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화본역이 그렇다.
- 주소 대구 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 711-9
- 네비게이션 ‘화본역’ 검색
- 입장료 무료
- 주차 역 앞 무료 주차 가능
- 추천 동선 역사 내부 → 플랫폼 → 급수탑 내부 → 기차 카페 → 조각 정원
- 소요시간 30분~1시간
- 참고 2024년 폐역. 기차 운행 없음
요닷은 경북의 숨은 공간과 사람을 발견합니다.